Prayer

자신의 비참함에 대한 고통스러운 의식에 매 순간 깨어있을 수 있는가? 공허와 우울은 그곳으로 향하는 중요한 알아차림 일 것이다. 자, 다 함께 기도를 하자! 건강한 자들이 늘어놓는 억지 자유가 아닌 자유. 그것이 넘쳐 흐르는 그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그 어떤 회의주의자도 가보지 못한 그곳으로 가는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다만, 절망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절망감 없이 부처의 설교나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Confabulation_1

오늘날 이미지의 생성과 소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모든 것이 넘쳐나고 남아도는 현대 문명의 풍요로움은 어떤 정형화된–이미지의 생성과 소멸의–반복과 기대감의 꿈을 현대인들에게 불어넣는다. 현대인들은 이 가상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자–마치 모든 것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있는–모든 피조물에 대한 갈증은 더욱더 끔찍해진다. 이제 개인은 당연히 심지어는 즐겁게 사회가 약속하는 이미지 속으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던져버리고 정형화된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이 행위는 아마도 “하루 종일 바람 피할 장소 하나 없이 허허벌판에서 자기 자신들을 에워싸는 철조망을 치고 돌아오는 수용소의 죄수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다른 점은 오직 현대인들은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한다는 착각일 뿐이며 그것은 그들이 부르짖는 자유이다. 그들은 진정 자유를 생각해보았을까?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 아니다. 다만 가끔만 사유하는데 사유 할 수 없는 것과 부딪혔을 때 그리고 그것을 피해갈 수 없을 때 비로소 사유를 시작한다”고 했다. 자유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얘기했고 항상 중요시되는 주제이다. 또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인간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자유라는 관념이 부딪혀 깨지는 경험이 없다면 사실은 단 한 번도 자유에 대해서 사유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자신들이 직접 쌓아놓은 철조망에 갇혀서 끊임없이 이미지생성 때문에 고통을 받고있는 그들 자신을 보게 된다. 이제 그들의 관심은 이미지 소멸로 향한다. 조금이라도 존재를 가볍게 하려는 욕망이 높아지자 이제 사회는 이미지 소멸에 관한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책임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우울증적 쾌락주의 상품들, 자연과 관련된 힐링을 가장한 기분전환 상품들… 하지만 행위의 근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미지 생성과 소멸 메커니즘의 덫에 걸려들어 이제 둘 중 하나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생을 마감할것이다… 2001년 여기는 북경의 한복판 난 이제 고궁(故宫, Forbidden City)안으로 들어간다. 무더운 8월의 여름 햇살. 이 성안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고(자객이 숨지 못하게 하기 위함) 그저 똑같이 생긴 끝없이 펼쳐지는 마치 사막과도 같은 광경뿐이다. 이제 다시 뒤돌아 갈 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중간에서 난 멈춰버렸다. 숭고라는 감정의 상처는 순간 나타났다가 사려졌다. 이제 반복되는 건물들, 반복되는 행위, 반복되는 인간들, 반복되는 오감의 자극들, 반복되는 모든것들… 차이는 없고 반복만 되는 동일성만이 남아버린 세상… 난 구토와 현기증을 느낀다.

Letter_1

Dear, Darkness
Thank you for visiting me again today. When you come back, the pretentious outlines of the world disappear; instead a true picture appears. Also, the crazy rocking desire in my heart can slowly calm down. This moment is the happiest time for me. Thank you. In fact, I have been afraid of you for a long time. With a worry that everything I made would disappear in the dark… People I like would disappear in the dark… Most importantly, I was so afraid that the person who lives in my heart and the memories would disappear. So, when you came to me, I was too scared to look at you. I just wanted you to leave as soon as possible and just closed my eyes to try to sleep. However, now I am looking forward to seeing you again. Someday if you come back to me, please stay with me forever. Please promise me that you will erase everything and take back everything to be one again. Please promise me. Please.
jkk

그들…

“오늘날 소통이라고 불리는것은 하나도 예외없이 속박당한자들의 침묵을 압도하는 소음일뿐이다.” p.341

의식의 상태에서 명백한 이유를 갖추어 행하는 반 사회적인 반항이 언제 부터인가 정의의 사도 코스프레어들에게 흥미로운 아이템이 되어버렸고 자본주의 체제의 유용성의 대상으로 매혹적인 상품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지극히 개인에 몰입되어 관심밖으로 밀려나 사소하다 못해 누구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존재들은 진정성을 유지하는듯하다.  그들은 이유를 알수없고 또 그것에 대해 물어볼수 조차 없는 그러나 뿌리칠수 없이 육박해 오는 무기력과 무관심… 그들의 몸짓하나하나는 익명의 세계로 편입 되려는 의지의 발현이며 이사회에 사유를 강제하며 전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들일것이다. 그자들은 누구인간?

외부의 요구보다는 자기 내면의 요구에 충실한 인간들. 내면에 제기되는 물음에 붙들려 세상을 잊고 사는 인간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한 나머지 타인과 대화할수 없게 된 인간들. 그들은 타인과 대화할때도 자기기만에 빠질수 밖에 없다. 모든 대화가 결국 자신과의 대화로 귀착되기 때문에 소통은 전혀 없고 독백을 대화로 착각할 정도로 유아론적인 주체. 그들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그 타인의 말에서 자기의 문제만을 보며 모두가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들은 광인이며 비 사회적인 인간이다. 광기에 빠진 미친놈들. 사회에 대한 감각도 전혀 없다. 타인과 만날수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세상을 다 잊을 만큼 자기 속으로 깊숙이 침잠 해야만 이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문제, 또 그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의 전망이 나올수 있을것이다. 고독속에 자기 안으로 무한히 침잠 할때에야 비로소 그 참된의제를 만나고, 발견이 되고, 그런 무한한 고독속에서 만나는 의제로 해서 비로소 공적인 공간이 열릴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거품이 아니며 장식처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들이 아니다. 자기의 한없는 고독과 싸우고 세상을 잃어버린 미친놈들이 있어야 그 사회가 비로소 소통할수 있는 공적공간, 진정한 의미의 광장이 열릴 것이다. 이름없이, 명예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한심한 인간들 덕분에 한 사회는 자신이 싸우고 극복해야 될 의제와 만나고 그 의제로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기 시작하고 진정한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에 사회가 사회로서 성립한다. 참새처럼 조잘조잘 오락처럼 재밌게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서, 즉 파스칼이 말한 ‘기분전환’ 만을 쫓는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번잡한 감각적 쾌락만을 낳게되며 산만한 쓰레기 파편들만 길위에서 나 뒹굴게 될것이다. 그들… 반사회적인, 고달픈, 그리고 고독한 인생을 홀로 견디고 소멸되는 그들 때문에 그나마 이 사회의 밝은 공간이 성립하고 또 유지되는 것이다.

Paradox

비대칭적이고 불균형적인 관계는 현실세계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체계의 완벽한 균형은 죽음에 가깝다. 불균형의 관계가 깨어지고 균형으로 사회가 향하게 된다면 사회는 나태와 무기력으로 이동하며 활기를 잃는다. 사회주의적 정치체계가 자본주의적 체계로 되돌아가는 상황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불공평은 극단적인 경우 파괴와 절멸을 가져오지만 체계를 변화시키면서 역동적으로 만들며 인간 자체로 하여금 진화를 향해 움직이게 한다. 불공평은 관계에 개입해 열기를 불어넣는 자극적인 필요성인 것이다.

조연 되기

앞과 뒤가 다르다. 너는 너의 강력함을 어필 할 수 있지만 묵묵히 고통을 견딘다. 너를 더욱더 깊숙한 곳으로 인도한다. 너는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평평하면서도 단단하다. 고통 속에서 강인해지지만, 고통을 대하는 방향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잘못된다면 너는 옆길로 새거나 아예 튕겨 나가 영원히 너의 본질을 찾지 못한다. 어떤 것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너, 매개자. 너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성질을 하나로 묶어주며 너의 임무를 다하는가? 항상 다른 것들에 가려져 너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너의 가치를 다하리라. 그대는 구원자인가? 너는 그런 면에서 천사에 등가한다. 너는 너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것이다. 보다 정당한 소통을 위하여… 평평하며 매끈해야 할 부드러운 살갗들이 맘 놓고 다니는 그런 곳에서 너의 모습이 드러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너의 존재를 최대한 숨겨라. 너를 봐달라고 외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다면, 너의 존재는 위험하리라! 너는 보았다. 언제 너의 진정한 가치가 발현되는지를… 묵묵히 진정으로 성실한 낙타만이 너의 고통에 대하여 불만을 표할 자격이 있다. 너는 과연 진정한 성실함을 묵묵히 느껴보았는가? 너는 매개자이다. 너는 너의 본질을 가지고 생겨났다. 본질은 실존에 앞서는가? 아니면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가? 이제 더는 상관없지 않은가 너의 프랑스 선생은 침묵한다. 활자로서, 책으로 된 나비로서 죽음의 고통을 떨쳐 버리려 했다. 진정 죽음을 극복하셨어요? 대답은 없고 고요만이 흐른다. 너의 프랑스 선생님 말씀대로 너는 ‘본질은 절대 실존에 앞서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너는 너의 본질에 온 힘을 다해야만 너의 존재를 깨닫게 되느니… 두 가지의 결합, 뒤섞임, 혼재된 세상…. 어떤 하나 또는 그것들 개개의 가치를 묻지 말고 그 자체로 바라본다. 특정 개체는 비어있다. 네가 너 자체가 되려면 텅 빈 무언가를 알아채야 한다. 텅 빈 무엇. 여기서 넌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떠올릴 것이다. 너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가? 그렇게 믿고 살아왔는가? 너의 또 다른 프랑스 선생님의 쿼시오브젝. 너는 프톨레마이오스 우주체계로,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너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너는 열심히 중심을 위해 돌아야 한다. 불공평하다고? 차별화는 전제되어 있다고 너의 독일 선생님은 말했다. 평등은 모두가 머릿속에서 ‘절대 가능하지 않다’라고 이미 전제된 어떤 것이다. 하지만 입으로는 필요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하고 개소리를 지껄인다. (여기서 개소리는 미국인 철학자의 글을 연상하며…) 세상이 불공평한 이유는 간단하다. 즉, 너는 너 자신이 타자들보다 우월하다는 자기 우월, 자기 사랑을 전제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 숨기고 있는 진실이 있다는 소리가 된다. 이제 이것은 더이상 개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사실 개소리보단 위험하지 않은 거짓말이다. 너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연극을 한다. 자아 연출을 해야 한다고? 그게 사회학이라고? 맞다 이 죽일 놈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 그놈의 잘난 우월과 자기애를 꺼내어 특별함을 부여받으려고 연기를 한다. 너는 그 부여함의 행위 자체로부터 파생되는 어떤 별개(개개의)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 이것은 윤리적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중간에서 소통을 왜곡하여 얻어지는 자기를 향한 힘을 위한 행위이다. 그것을 행함이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과 그것을 지극히 깨닫지 못하고 계속 이어가는 어떤 힘. ‘잘못된 최선은 최악이다’라고 했던 너의 유대인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무엇이 잘된 것인가?’ 라고 너는 너 자신에게 질문한다. ‘그냥 차라리 날 더욱 세게 내리쳐라 이 세상아!’ 하고 신께 부탁해라. 왜냐면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언제 너의 진정한 가치가 발현되는지를…

Self-talk

Like an engine constantly running, every single part of life – whether human or technological, organic or inanimate – never stops communicating. The communication between humans is a kind of oxygen that we need to survive. We are, therefore, an easy target for all forms of mass communication, which in the twenty-first century seems to have no limits, no way to resist or turn it off. I wanted to step outside of the external word of endless communication and think about some aspects of my own internal communication; questions I could ask or try to answer in the ongoing internal dialogue with myself. Is this a private world beyond language? It seems to me that we are able to communicate in direct feelings and unarticulated thoughts in terms more related to instinct and desire than language. I wanted to highlight a distinction between feelings and language and to emphasise aspects of psychology and emotion in the forming of personal values and decision-making.

위를 보자!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그리고 아래를 봐도 오직 요란한 소리를 발산하는 것들뿐인 거대한 소음의 세계. 자발적으로 끊임없이 소음을 방출하도록 프로그램화된 우리의 피조물들, 현재적이고 즉각적인 것들만이 특권화 되어지는 현대 사회가 낳은 괴물들,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확인받으려는 욕망의 분출물들. 그들은 이제 우리의 의식속으로, 몸속으로, 정신속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무자비하게 기식한다. 먼저 장기를 먹고 모든 뼈속으로 촉수를 심고 뇌로 올라와서 그들의 출생지로 숙주를 이동시켜 미친듯이 숙주가 소음을 먹도록 조정한다. 그들은 이제 엄청난 파워로 이세계를 조정하는 자들이다.

이제 남은 곳은 그나마 조용한 위쪽이다. 위를 보자! 귀를 넘어서는 그곳에서 비로소 소리가 들리고, 눈을 넘어서는 그곳에서 비로소 풍경 보이고, 생각이 소멸하는 그곳에 발상이 있고 그곳에 바로 기쁨의 숨결의 묘지가 있으며 또 다른 기쁨이 출산하는 곳이다. 떠나갔으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모든 존재와 사물들은 그곳에 있다. 나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혼자 있을 수 있고 모든 광경을 머릿속에 가득 담아 둘 수 있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시시껄렁하게 즐거워하는 그 기식자들의 낯짝을 피하자. 그렇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절망이 되살아 나서 심각한 구토가 올라오리라. 그것들은 마치 한 방울씩 계속해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고문과도 같다. 그러니, 위를 보자! 어떻게든 자유를 원한다면 위를 보자! 파란 바람이 불어오고 보이지 않는 환한 별들이 나에게 손짓하는 그곳을 보도록 하자. 껍데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Schöne Seele

“… Advertisements have them chasing cars and clothes, working jobs they hate so they can buy shit they don’t need. We are the middle children of history, with no purpose or place. We have no great war, or great depression. The great war is a spiritual war. The great depression is our lives. We were raised by television to believe that we’d be millionaires and movie gods and rock stars–but we won’t.  And we’re learning that fact. And we’re very, very pissed-off.”

Everything is a commodity; a commodity is everything. This huge system of life is exchanged and graded on the basis of the product, and the logic of the usefulness of technology dominates. Sometimes you try hard to get out of the way somehow. But again you think of the existence of such a small crack or finding it as nonsense, giving up your life, hiding it, or humbling in perpetual anguish. But you do not complain about society or transfer responsibility to others. Without any reasons, you only contemplate and study about the door steadily and silently. Then, one day you will find a friendly manual about the small crack. Now, you put down what you were making crazy without consciousness for a while, and now you are quietly observing the world. In deep meditation, you find a small hole. Slowly you get out through the hole and keep walking forward through the small trail that extends in the future. You find a large tree with a great distance. You slowly sit under the tree and close your eyes, thinking of the nourishment that makes the tree so green. You have a dream. You have a dream that you never dreamed of in that the huge system, and you get the comfort of life and find hope in that dream. Someone tried very hard to find a morality there. A morally pure and innocent soul, ‘a beautiful soul.’ What can you dream under this tree that grows with an infinite imagination?